─ 어떤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항상 어떤 사랑에 ‘빛을 비추는 것’이며, 또 어떤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사랑을 위해 새로운 은유를 찾아내는 일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L'eau et les rêves





“나는 그 사람도 죽어버려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다음엔 언제 보게 될까 하는 걱정을 그만둘 수 없다면 적어도 그의 죽음이 그 모든 것을 끝내주기를 바랐다. 그뿐인가, 그 대단할 것 없는 존재가 나를 얼마나 괴롭혀왔으며, 그의 수영복 반바지, ‘천국’에서의 그의 자리, 그의 얄미운 나중에!, 입맛을 다실 만큼 그렇게나 좋아하는 살구 주스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지칠 줄 모르고 이것저것 다 괜찮다는 만사 무사태평한 태도가, 다른 사람들이 먼저 걸쇠를 열었을 때 대문을 가로질러 해변으로 휙 가버리는 게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주려고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었다. 죽이지 않으면 평생 불구로 만들어 휠체어 신세로 우리 곁에 두면, 어디 있는지 늘 알 테니 찾기는 쉽겠다. 이제 불구인 상태니 나는 우월감을 느끼고 그 사람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때 대신 내가 죽어버리거나 나 자신을 심하게 해쳐 내가 왜 그랬는지 그 사람이 알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얼굴을 망가뜨리면, 그 사람이 나를 보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렇다, 나중에! 왜, 누가 왜 제게 이러는지 궁금해 했으면 했다. 마침내 퍼즐 조각을 맞추고는 벽에다 자기 머리를 부딪치겠지.”


“I wanted him dead too, so that if I couldn’t stop thinking about him and worrying about when would be the next time I’d see him, at least his death would put an end to it. I wanted to kill him myself, even, so as to let him know how much his mere existence had come to bother me, how unbearable his ease with everything and everyone, taking all things in stride, his tireless I’m-okay-with-this-and-that, his springing across the gate to the beach when everyone else opened the latch first, to say nothing of his bathing suits, his spot in paradise, his cheeky Later!, his lipsmacking love for apricot juice. If I didn’t kill him, then I’d cripple him for life, so that he’d be with us in a wheelchair, I would always know where he was, and he’d be easy to find. I would feel superior to him and become his master, now that he was crippled.

Then it hit me that I could have killed myself instead, or hurt myself badly enough and let him know why I’d done it. If I hurt my face, I’d want him to look at me and wonder why, why might anyone do this to himself, until, years and years later─yes, Later!─he’d finally piece the puzzle together and beat his head against the wall.”


“I’d sooner die than know you hate me.(당신이 날 싫어하는 걸 아느니 내가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요.)” 엘리오는 이 순간이 오기 전 그런 쪽지를 쓰다가 버린다. 정확히는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차라리 죽여버리거나 곁에 두기 위해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은 충동과,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후회하도록 자신을 죽이거나 해치고 싶은 충동을 함께 느낀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도 나 혼자 상처 받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기분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를 알고 싶어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에서 밑에서 다시 언급할 스탕달의 『아르망스』를 들어 이런 충동의 일부를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자살에는 잘 생각해 보면 동기가 없다. 그 상념에 어떤 견고한 실체도 부여하지 않으며, 죽음이라는 상투적인 결론이나 무거운 장식도 예측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떻게’ 자살하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그 상념은 내가 울적한 마음으로 애무하는 하나의 문장, 그러나 그 문장의 사소한 것이 나를 바꾸어 놓는 그런 문장이다.





소중하게, 넉넉하게 제 품에 안는 올리버와 내맡기듯 안기는 엘리오.





아미와 티모티의 호흡이 굉장히 자연스러워, 이 순간에서의 두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당연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성적 긴장감 역시 마땅히 절묘하게 배어 있다.





숨죽여 서로를 탐색하려던 중 올리버가 별 생각 없이 슬쩍 밀어 닫은 문이 쾅 닫히는데, 이미 처음 빌라에 온 날 쾅 닫힌 문에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절묘하고 재치 있게 살린 디테일. 





영화는 올리버에게 있어 여러모로 불리하다. 제임스의 각본이 1인칭 화자의 기나긴 독백 식의 이야기를 멋지게 3인칭으로 바꾸어 다듬고 후반부에 올리버에게도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주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더 많은 장면이 엘리오에게 주어졌고 그를 주목하며 그를 따라가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불친절한 편집에 올리버는 세간에 소위 나쁘고 무책임한 남자로 비춰지는 오명을 얻는 듯하지만, 각본에서 올리버는 엘리오와 몸을 섞을 때까지 아주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엘리오를 배려한다.


올리버 (계속해서)

너 이거 정말 원하는 거 맞아?


엘리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네.


올리버 (계속해서)

우리 이거에 대해

얘기해본 적이 없어서.


엘리오는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올리버는 양손으로 엘리오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 나른해진 태도로 훨씬 더 진지하게 그를 바라본다.


올리버 (계속해서)

키스해도 돼?


그는 불쑥 웃어버릴지도 모를 것처럼 키스하려다 말고 손가락으로 엘리오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헝클어뜨린다.


맹렬하게 갈구하는 키스를 위해 엘리오는 올리버의 입술에 그의 입술을 가져간다. 무언가가 둘 사이에 걷히는 듯하자 둘 다 키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감은 두 눈을, 코를, 두 귀를, 목을 그의 입술로 발견해가며 굶주린 듯 키스한다. 올리버도 열렬하게, 거칠게 까지 그에게 키스한다.


엘리오가 이불 밑으로 들어간다. 침대에 치우지 않은 책 한 권, 잡지들, 담뱃갑 같은 것들이 있어 엘리오는 원래 거기에 없었던 듯 그 밑으로 발을 미끄러뜨린다. 모조리 바닥에 떨어진다.


올리버도 이불 밑으로 들어가 엘리오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올리버

(속삭이며)

벗어, 벗고, 벗고, 벗고...

(옷가지를 내던지며)


엘리오는 곧 벗겨지고 간밤에 거리에서 마르치아가 그랬던 만큼이나 파고들어 알고 싶은 듯 올리버가 그의 몸 위로 제 손을 움직일 때 일종의 황홀경에 사로잡힌 채 누워 있다. 올리버가 시트를 끌어내릴 때 엘리오는 그가 보는 앞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게 너무나 좋다. 아무것도 숨기는 것 없이.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키스하고 그의 몸에 키스하고 그의 성기(화면 밖)를 잠깐 입으로 가져가고는 그 자신도 마침내 자유로워지려는 듯 엘리오의 벌어진 입술로 돌아와 다시 더욱 진하게 키스한다. 올리버 역시 다 벗겨져 이제 엘리오에게 닿지 않는 부분이 없다. 둘은 서로를 뚫어지게 본다.


올리버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므로, 엘리오는 눈을 돌린다. 그리고는 올리버의 어깨가 엘리오의 무릎을 문질러 둘이 몸싸움을 하는 것 같은 자세를 잡는 순간 다시 눈을 돌려 이제는 자신이 올리버를 가만히 본다. 엘리오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이 순간이 되살아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사랑과 기대가 주는 열띤 감정으로 올리버의 두 눈을 바로 본다.


그 일이 일어날 때, 올리버가 엘리오의 안으로 들어갈 때, 고통과 불쾌감이 어느 정도 있다. 엘리오는 몸을 움츠리고 당장 올리버를 멈추게 하고 싶은 충동과 싸운다. 올리버가 그 모습을 본다.


올리버 (계속해서)

괜찮아?


한없는 시간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엘리오와 직감적으로 그에게 만회하려는 올리버 사이에서 오가는 듯하다.


둘은 성교한다. 두 몸이 얽매어 있다. 엘리오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 있고, 올리버의 얼굴은 더욱 확고하며, 그 입술은 엘리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몸을 앞으로 굽힐 때까지 엘리오가 하는 말을 조용히 거듭한다.


올리버 (계속해서)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그럼 난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둘은 계속해서 노닥거린다. 엘리오가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영역이 그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엘리오가 자신의 이름이 올리버의 이름인 것처럼 소곤거리면서.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다윗의 별이 올리버의 가슴 위로 튄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사랑해.”를 더 높은 차원으로 대체하는 둘만의 원형적인 암호로, 합일을 맞고 감격한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처음 제안한 것이다. 다소 충동적이고 장난스러워 보일 만한 제안에 실린 그 본질의 무게는 가중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돌이켜보아도 여전히 살아 있어 일생을 뒤흔들어온 것이 된다. 소설과 영화의 제목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그럼 난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I love you.(사랑해.)”에 “with all my heart and soul.(내 온 마음과 영혼을 바쳐.)”을 더해도 그보다도 강력하고 시적인 올리버의 제안은 도취된 엘리오가 주저 없이 “엘리오.”라고 말하면서 합의된다. 네 이름을 부름 받아 내가 네가 될 수 있는 것, 나를 기꺼이 네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것, 내가 내 이름으로 너를 불러 네가 내가 되게 하는 것, 너를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오게 하는 것. 은밀하게 시작된 그 발화는 시간이 흐른 뒤에, 영화에서는 마지막 전화 통화 장면에서, 간단하게 서로의 이름을 갖는 것으로 서로의 모든 것을 가지리라는 의지와 바람이 꺾일 때, 둘은 그게 서로의 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은 중대한 제안이었고 합의였는지를 통감한다. 그런데도 비정한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에 서로가 각자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은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위는 한숨 섞인 소리가 아니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살아 있으므로 그 발화에는 실체가 있다. 그 실체가 과거이자, 추억이자, 현재이자,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의 것인 까닭이다. 두 사람이 마지막에 각자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것들이 변해도 서로가 여전히 서로의 생에 실재할 것을 맹세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엘리오는 눈을 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올리버를 보지만 미소를 머금거나 키스를 받으려고 얼굴을 드는 대신 마치 올리버를, 침대를, 방을, 실제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잊으려는 듯 다시 눈을 감는다. 그는 깨어 있으려고 한다. 팔다리를 쭉 펴고는 시트로 맨몸을 덮는다. 올리버는 다음날 엘리오를 파고든 감정들을 새기듯 유심히 그를 본다.


올리버

너 기분 안 좋구나.

역겹다고 느끼는 거지, 아니야?


엘리오는 올리버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말을 무시한다.


올리버 (계속해서)

우리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럴 줄 알았다. 얘길 했어야 했어.


엘리오

그럴 지도요.


올리버

(“그럴 지도요”는 듣고 싶었던 단어가 아니어서 괴로워하며)

싫었어?


엘리오

아니, 전혀 안 싫었어요.





엘리오는 지나치게 예의를 차린다고 올리버의 침대에 남아 있다. 그 순간 올리버가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마음을 누그러뜨리면서 처음으로 미소를 띠고 올리버를 돌아본다.


올리버

더 자도 돼, 자고 싶으면.


엘리오가 기지개를 켜고 올리버를 안고는 눈을 감는다. 올리버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그의 확신 없는 표정을 살핀다. 엘리오는 잠들지 않고 올리버의 손을 치우면서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침대를 벗어난다.


엘리오

수영하러 가요.





“어젯밤 있었던 일 때문에 날 원망할 거니?”

“아뇨.”







나락에서 다시 눈부신 이탈리아의 여름이 있는 지상으로 돌아온 듯한 올리버의 안도.





이 역시 이전 장면을 촬영하고 편집한 것 같다. 이 장면에서 스탕달의 『아르망스』가 보인다. 각본에서는 엘리오에게서 책 선물을 받은 올리버가 말한다. “Zwischen Immer und Nie...(항시와 전무 사이: 언제나 그런 것과 결코 아닌 것 그 사이에...) 말없이 그대에게. 80년대 중반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이거 올해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앞으로 수년 뒤에, 그 사람이 여전히 그 책을 갖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 마음이 아프기를 바랐다. 언젠가 그의 책들을 훑어볼 누군가가 이 조그만 『아르망스』 책을 펴고, 8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말이 없었던 게 누구였어요? 라고 묻기를 바라는 게 더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이 비탄만큼이나 느닷없이 솟구치고, 회한보다도 더 격렬한 감정을 느껴, 어쩌면 나를 더 연민하기를, 그날 아침 서점에서 나도 나를 연민했을 테니까, 연민이 그 사람이 줘야 하는 전부라면, 연민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끌어안고, 이 솟구치는 연민과 회한에 매여 막연한 상태로 헤매며, 몇 년을 저 밑에서 숨어 드러나지 않는 관능적이고 불온한 움직임을 일렁이게 할 수도 있다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로 그 사람에게 입 맞추고 너무나 필사적으로 내 안에서 그 사람을 원해서 그 입에 내 침을 넣어주었던 때, 모네의 둔덕에서의 그 아침을, 그 사람이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In years to come, if the book was still in his possession, I wanted him to ache. Better yet, I wanted someone to look through his books one day, open up this tiny volume of Armance, and ask, Tell me who was in silence, somewhere in Italy in the mid-eighties? And then I’d want him to feel something as darting as sorrow and fiercer than regret, maybe even pity for me, because in the bookstore that morning I’d have taken pity too, if pity was all he had to give, if pity could have made him put an arm around me, and underneath this surge of pity and regret, hovering like a vague, erotic undercurrent that was years in the making, I wanted him to remember the morning on Monet’s berm when I’d kissed him not the first but the second time and given him my spit his mouth because I so desperately wanted his in mine.”





엘리오가 간밤의 성교를 후회하거나 끔찍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올리버는 부부의 눈에 띄거나 들키지 않게 그러쥔 손을 입가에 희미하게 움직여가면서 황홀한 순간에 인 감정들을 되새겨본다. 영화가 올리버에게 허락한 자리는 비교적 협소하지만, 이렇듯 순간 순간 아미가 보여주는 ‘내성적인’ 연기는 무척 섬세하다.





첫 성교 후의 첫 아침식사 자리에는 묘한 공기가 감돈다. 선글라스를 끼고 느릿느릿 걸어 나온 엘리오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는다. 첫 성교에 따른 통증과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모종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듯, 여느 때와 달리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모습, 그리고 그런 디테일들을 눈치챈 아넬라, 대비되는 펄먼, 말없이 제 감정들을 복기하는 올리버까지, 이 구도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상당하다.


이 장면에서의 엘리오의 모습은 자전거를 타고 올리버를 쫓아가는 다음 장면을 바꾼 것이다. “자전거를 꺼내와 대문에서 다소 조심스럽게 자전거 안장 위에 앉는다. 아프지만, 올리버를 쫓아간다.” 





올리버

무슨 일 있어?


엘리오

그냥 당신을 봐야 했어요.


올리버

내가 지겨운 게 아니고?


엘리오

그냥 같이 있고 싶었어요.

가라면 지금 돌아갈게요.


올리버는 보내지 않은 편지 묶음을 든 손을 떨어뜨린 채 가만히 있다. 그저 엘리오를 바라보고, 고개를 저으면서 거기 서 있다.


올리버

우리가 같이 자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알기는 해?


엘리오

모르겠어요.


올리버

그냥 모르는 게 좋겠다.

네가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널 망쳐놨다는 생각만 해도 정말 두렵다.

이 일로 우리 중 어느 누가 어떻게 해서든

대가를 치르는 건 원하지 않아.


엘리오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

문제 생길 일 없을 거예요.


올리버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난 분명 어떻게든

내가 한 일로 대가를 치르겠지만.

근데 너한텐, 넌 그게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두는 거야, 그래야만 하고.

나한텐 내가 알지 못했던 특별한 일이야,

내가 날 겁내지 않아도 되는 것 같고.





올리버가 엘리오의 그 복숭아를 맛보는 건(소설에서는 진짜로 먹는다.) 성적인 유희나 쾌감 때문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엘리오의 일부가 있기 때문에 갖겠다는 의지다. 올리버가 떠난 뒤 엘리오는 그날의 올리버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의 몸짓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내 몸 속 모든 세포가 네 몸 속 모든 세포는 결코,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믿어, 그러니 죽어야만 한다면 내 몸 속에서 죽게 해줘.’라고.”


“As though, his gesture had said, ‘I believe with every cell in my body that every cell in yours must not, must never, die and if it does have to die, let it die inside my body.’”


간밤에 내가 너와 잔 건 진심이었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 일부를 가져 내가 네 일부가 되고도 싶어.

‘이렇게 해서’ 너를 가질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이렇게 할 거야.


“내 것이었던 게 그의 입 속에 있어, 이제는 내 것이기보다 오히려 그의 것이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격렬하게 울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나는 어떤 낯선 사람도 그토록 다정하거나 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준 적이 없어 울었다. 나는 결코 그런 고마움을 알지 못했고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방법이 없어 울었다. (...) 오늘 아침에 내가 그에게 품은 불쾌한 생각들 때문에 울었다. (...) 그는 여전히 씹고 있었다. 한창 격정적일 때 그게 의미하는 건 딱 한 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전혀 달랐다. 그는 내 불쾌한 것을, 내 아픔을 없애주고 있었다.”


“Something that was mine was in his mouth, more his than mine now. I don’t know what happened to me at that moment as I kept staring at him, but suddenly I had a fierce urge to cry. (...) I was crying because no stranger had ever been so kind or gone so far for me, (...) I was crying because I’d never known so much gratitude and there was no way to show it. (...) And I was crying because for the evil thoughts I’d nursed him this morning. (...) He was still chewing. In the heat of passion it would have been one thing. But this was quite another. He was taking me away with him.”


아시먼은 이 장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It takes a very physical, almost lusty moment, and it finds its emotional equivalent right away so that it never allows you to dwell on the physical without ever giving you also the emotional counterpoint to it.(굉장히 관능적이고, 거의 성적 욕망에 가까운 순간으로 나아가서는 곧바로 그에 상응하는 감정적인 대응을 찾아내 그 순간에 감정적인 대비를 주지 않고는 결코 성적인 면에만 연연하는 일은 없게 하는 식이에요.)”


처음으로 몸을 섞은 뒤에 엘리오에게 닥친 혼란이 그렇듯, 이 장면에서 엘리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제임스의 각본에서는 다가올 이별에 대한 무기력한 두려움과 슬픔으로 표면화되었다. 각색에 있어서 불가피한 점이었다기보다 영화라는 틀 안에서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갈등과 밀고 당김, 겉치레, 일말의 ‘숨김’ 없이 맨 얼굴로 마주하는 두 연인들.





“He made me feel like a member of the family - almost like a son-in-law.(날 가족인 것처럼, 거의 사위인 것처럼 대해주셨어.)” 나중에 올리버가 엘리오와의 통화에서 밝힌 것처럼, 엘리오의 부모는 싹싹하고, 지적이고, 자신들의 일도 척척 돕고, 누굴 만나든 친화력 좋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올리버를 진심으로 아꼈다. 그런 모습이 특히 잘 반영된 장면이다.





아미는 “a billowy bright blue shirt”를 비롯해, 파란 티셔츠, 초록색 셔츠 등 푸른 계열 색감이 무척 잘 받는다.







이 장면의 엘리오는 보자마자 예고 때 각도를 달리해 무수히 그리는 때마다 설렜던 줄리앙이 떠오른다. 티모티에게는 그러한 고대 조각상의 야릇한 인상이 잔존해 있다.







이 순간을, 제임스의 각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지난 겨울 처음 이 각본을 봤을 때 인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IT’S THE KISS OF A LIFETIME.(그것은 일생의 입맞춤이다.)”







올리버는 엘리오를 처음 만나 함께 한 그 여름을 이 클로즈업 하나로 다 말해야만 했다.





그의 내부에서 내는 신호음인 듯 어깨 너머 멀리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차역으로 넘어가는 설정이 무척 고전적으로(기차역에서의 연인들의 이별은 언제나 고전적이며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근사하며 동시에 가차 없이 무자비하다.





둘이 함께 하는 마지막 장면. 엘리오는 늘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올리버의 셔츠를 입고 있다.





잠시 현실을 빌려오면, 이때의 여름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여름이자 티모티와 아미의 여름이기도 했다. 영화는 순차적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함께 보내고 다다른 클루조네 역에서의 이별은 티모티와 아미에게도 각별했을 것이다. 그런 비하인드로 인해 이 장면에서의 감정은 더욱 깊고 애틋하고, 저 다른 세상의 것이 아닌 영화가 틈을 비추어 보여주는 묘한 현실성을 다소 띠게 되었다.





클루조네 역에서의 마지막을 올리버에게 내어주어, 초 단위로 흐르는 그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봉쇄하고 외면하지 않지 않은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시종일관 헬리오스의 해처럼 눈부시게 살아 넘치는 엘리오에게 그가 빛날 자리를 내주고 그 빛으로 인해 일부 가려진 첫사랑의 상대로서 그를 받쳐 주는 지점에 있으면서도 아미는 조용히 중심을 지키고 올리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결에 집중했다. 눈에 띄지 않게 그 변화를 조율해왔으므로, 켜켜이 함축되어 새벽 호텔 장면에서 이 장면으로 이어져 드러내는 감정의 증폭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디로 눈을 둬야 할 지 모르는 엘리오와 기차에 타려고 뒤돌아설 때까지 엘리오에게 눈을 떼지 않는 올리버의 대비. 특별한 디렉션 없이 각자 이 순간에 차오른 감정들을 밝히는 듯하다. 아미는 이 영화를 위해,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그 오랜 시간 아껴온 듯, 후회 없이, 고민 끝에 자신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올리버를 이 자리에 새기고 갔다.





다행히 로마에서 머무는 내내 꼭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셔츠를 입게 하고, 그날 아침 다시 그에게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셔츠를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 객실에 있는 플라스틱 세탁 백에 넣었는데 아무도 들추어 꺼내 손대지 못하게 아마 평생을 숨겨둬야 할 것 같다. 어느 밤, 세탁 백에서 바람에 부풀어 오르는 셔츠를 꺼내 플라스틱 냄새나 내 옷 냄새가 배지는 않았나 살펴보고는, 내 곁에 잘 두었다가 그 긴 소매를 내 몸에 둘러 펄럭이고, 어둠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내쉴 것이다. 울리바, 울리바, 울리바─ 그 이름은 마팔다와 안키세가 말하듯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을 바꿔 부르는 소리를 흉내 낼 때 자신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올리버였다. 그러나 그 이름은 또한 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기를 바라면서 내가 그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부르는 나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대변해 나 자신에게 불러주고, 그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엘리오, 엘리오, 엘리오.


Luckily I’d asked him again to give me Billowy that morning, after I’d made sure he wore it all through our stay in Rome. I had put it in a plastic laundry bag in our hotel room and would in all likelihood have to hide it from anyone’s prying reach for the rest of my life. On certain nights, I’d remove Billowy from its bag, make sure it hadn’t acquired the scent of plastic or of my clothes, and hold it next to me, flap its long sleeves around me, and breathe out his name in the dark. Ulliva, Ulliva, Ulliva—it was Oliver calling me by his name when he’d imitate its transmogrified sound as spoken by Mafalda and Anchise; but it’d also be me calling him by his name as well, hoping he’d call me back by mine, which I’d speak for him to me, and back to him: Elio, Elio, Elio.






자연과 사람, 둘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둘을 축복하는 듯 비춰지지만, 둘을 갈라놓는 저항할 수 없이 절대적인 장애물이 있다. 그 속에서 살지만 가는 결들을 느끼지 못하고 거듭 놓치다가 훗날에야 얼마나 가고 없는지를 깨닫는 그것, 시간이다. 올리버는 한 달 반가량을 펄먼 가족의 빌라에서 지내지만 각자 애태우던 엘리오와 올리버가 뜨겁게 사랑하는 때는 그 시간을 훨씬 밑돌아, 마침내 이루어져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밀애의 순간들은 엘리오와 올리버 사이의 극적 긴장감과 눈부시게 태연한 여름 한철의 균형을 잃지 않고 (불친절한 편집은 논외하고) 견고하게 짜간 이전 장면들과 달리 연속적인 파편에 가깝다. 엘리오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탄식한 뒤로 후회 없이 열렬하게 자기 감정들을 드러내듯 영화적인 호흡이 급격하게 짧다.





“놀랄 만한 호수, 스스로의 물의 열기, 부드러운 열기를 질투하듯 보존하고 있는 호수가 있는 곳은, 동굴 깊숙이나 대지의 품속이다. 깊이 가치 부여된 물속에서 생겨난 시간적 이미지는 어떠한 농도도 갖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속에 근원의 물과 열량의 표시를 간직하면서 서로 뒤섞일 것이다. 오직 물질 만이 남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에 있어 형식적 이미지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만, 물질적 이미지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실체로부터 진실로 생겨난 환영들은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멀리 밀고 갈 필요가 없다.”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엘리오는 올리버의 눈을 이렇게 말한다.


“lovely, clear pool of his eyes” 

“아름답고, 투명한 심연 같은 그 사람의 눈”





시간의 불가항력적인 유한성과 불가해한 영속성, 유동하고 능동적이고 치유하고 포용하며 원천으로 회귀하는 속성으로서의 물은 용해된 한 몸인 듯, 기이하게 조화된 하나의 속성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가 작용하는 이야기 전체의 근간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복합적인 시각매체로서 영화는 물의 이미지와 그 힘, 그 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와 뇌리에 새긴다. 다형적인 물은 성적이면서 지적인 유희의 반영인 좁은 인공 수조에서, 시간을 넘어 살아남은 고대 조각상을 통해 올리버와 직결된 태고의 욕망을 그의 수면으로 끌어올려주는 거대한 가르다호로,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닌 올리버가 보는 ‘흐르는 강물’로, 엘리오의 가장 깊은 내면과 직결되어 엘리오 자신이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 억누를 수 없는 갈망과 직시할 힘을 주는 투명한 샘 폰타닐리 가베리네로, 본심과 상관없이 엘리오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씻겨주고 그의 마음을 다스려주는 이른 아침의 강으로 옮겨가, 마침내 근원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물의 방벽, 알피 오로비에가 세리오 강을 만들고 세리오 강이 만든 거대한 폭포 카스카테 델 세리오로 현신해 엘리오와 올리버를 제 품에 끌어안는다.


나는 폴 클로델이 에세이 『아침 햇빛 속 검은 새L’Oiseau noir dans le soleil levant』에서 말한 바, “대지의 시선이 되고, 시간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서의 물, 시간, 엘리오와 올리버라는 무한한 삼각형을 바라본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옛날 가축의 물통을 쓰던 좁은 인공 수조 →  가르다호 →  ‘흐르는 강물’ → 폰타닐리 가베리네(샘) → 강 →  카스카테 델 세리오(폭포)라는 ‘확장되어 나아가는 힘’으로 외형의 변모를 거치는 물은 두 사람의 사랑과 태생적인 연결의 근간을 이루어, 마침내 두 사람이 그 원형原形에 뛰어들도록 둘을 끌어당긴다.


물이라는 심상image을 통해 상상력에 있어 물질이 행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밝히는 『물과 꿈: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에서 바슐라르는 “풍경 전체를 자기 자신의 운명을 향해 끌고 가려는 것”으로서 흐르는 물을 말한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서사를 이해하는 핵심인 ‘흐르는 물’은 ‘언젠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흐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흐르는 물에는 현재의 지점과 앞으로 다다를 지점 사이에 층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물은 그 자신이 지닌 심도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용해시킬 수 있는 순물질이다. 수면 위에서 시간은 두 사람을 갈라놓지만 수면 아래 만물을 포용하는 물의 힘은 제게로 뛰어든 두 연인을 품어 하나로 묶어둔다. 떠났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지중해 표류기 오디세이아가 모든 이야기의 원형原型이 된 이래로 엘리오와 올리버가 호흡하는 세계에서 원형原形으로서의 물은 두 연인을 대지의 전지적인 시점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이야기의 거대한 순환의 원형圓形을 그려가며, 두 연인에게 시간의 유한함과 무한함을 동시에 일깨워 사랑이 항구히 보존될 수 있는 법을 속삭이듯 넌지시 알려준다. 훗날 엘리오는 운명적으로 그것을 깨닫고 어느 날 밤 그날 여름의 자신에게 고백한다. 그 고백은 스스로를 위안하는 듯하다.


“우리의 생은 거의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멈추고 천국이 지상으로 내려와 탄생에서부터 신의 힘으로 우리의 것인 그 몫을 주는 저편으로 건너갔다.”





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The winds of heaven mix for ever

With a sweet emotio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spirit meet and mingle.

Why not I with thine?─


See the mountains kiss high heaven

And the waves clasp one another;

No sister-flower would be forgiven

If it disdained its brother;

And the sunlight clasps the earth

And the moonbeams kiss the sea:

What is all this sweet work worth

If thou kiss not me?


샘은 강과 몸을 섞고

강은 대해와 몸을 섞고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감미로운 감정과 섞여 영원히 어울리는데

세상 무엇도 혼자는 없으니

세상 모든 것이 신의 법에 따라

하나의 영혼이 되어 만나고 섞이는데

왜 나는 당신의 것과 섞이지 못할까─


보라 산이 높은 저 하늘에 입 맞추는 것과

파도가 서로를 끌어안는 것을

어떤 꽃도 용서받지 못하리라

같은 처지인 꽃을 경멸하면

햇빛이 대지를 그러안고

달빛이 바다와 입 맞춰도

이 모든 감미로운 일이 무슨 소용 있나

당신이 내게 입 맞추질 않는데



원작에서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셸리의 시 「사랑의 철학Love's Philosophy」에는 자연의 마땅한 이치와 달리 자연의 본성의 자리에서 추방되어 ‘unattainable’한, 이를 수 없는,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얻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자, 엘리오이자 또한 올리버의 이름으로 환언될 수 있는 자의 ‘마땅하지 않은’ 처지, 타인을 배제하고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 던의 “No Man is an Island”의 개념(각본에서 엘리오에게 “동떨어진 인간이 되지는 말라”는 펄먼의 충고와 같은 맥락에 있다.), 필연적이고 성적인 욕망으로 부글거리는 물의 운동에 관한 이미지가 현현한다. “샘은 강과 몸을 섞고”, “강은 대해와 몸을 섞고”, “파도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영화의 배경이 원작의 리구리아 해에서 각본의 시칠리아를 거쳐 롬바르디아에 정착한 까닭에 망망대해의 이미지는 볼 수 없지만 빙하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는, 심연에 묻혀 있던 고대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낸, 이탈리아에서 가장 거대한 가르다호의 태고적의, 물선 듯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엘리오의 다윗의 별이 강물에서 처음으로 떠오른다. 엘리오에게 다윗의 별은 자신이 찾아낸 자신과 올리버 사이의 ‘거부할 수 없는’ 공통점,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으로서의 ‘올리버’가 되고 싶은 사랑의 속성, 올리버와 동등한 입장에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 갈망의 표상이다.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엘리오의 자리, 옛날 모네가 그림을 그리러 온, 모네의 둔덕Monet's Berm이다.


“내가 그 사람을 이리로 데려온 게 그냥 나의 작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작은 세상에게 그 사람을 들여보내달라고 부탁해, 내가 여름 오후에 혼자 있으려고 왔던 곳이 그 사람을 알게 되고, 판단하고, 이곳에 어울리는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봐서 내가 다시 이리로 돌아와 기억할 지도 모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긴 내가 다 아는 세상에서 달아나 나만의 또 다른 창작을 하러 오곤 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나 자신이 더 나아지고 발전하는 발판에 그 사람을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It never occurred to me that I had brought him here not just to show him my little world, but to ask my little world to let him in, so that the place where I came to be alone on summer afternoons would get to know him, judge him, see if he fitted in, take him in, so that I might come back here and remember. Here I would come to escape the known world and seek another of my own invention; I was basically introducing him to my lauchpad.”





이 장면은 순수하게 영화만 놓고 볼 때 그 안에 잔존하는 눈에 띄지 않는 내밀한 은유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용히 아끼는 장면이다.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장면이다. 올리버는 알피 오로비에가 내어준 순수하고 투명한 샘물에 손을 담가 저어보고, 그 물을 떠 열기에 들뜬 얼굴을 식힌다. 폰타닐리 가베리네는 ‘엘리오의 자리’다. 그 자신이 고백했듯 다 아는 세상에서 달아나 오롯이 혼자 있는 내밀한 세계다. 그 자리에는 생명의 가장 순수한 원천인 샘이 있다. 물이 지닌 기이한 물질성과 능동성으로 인해, 엘리오가 머무는 동안만은 햇빛, 나무, 나뭇잎, 풀잎, 꽃, 흙, 그늘, 그림자, 정적 그리고 샘물이 모두 그의 소유인 곳에 올리버가 발을 담그고, 손을 담그고, 저어보고, 제 얼굴에 적셔보는 행위에서, 나는 물이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엘리오의 본체로 환언되는 순간을 바라본다. 바슐라르가 말하는 (물의 물질적 상상력이 무의식 세계에서 그 상상력을 지배하는 물질에 머무르지 않고 더 능동적이 되어 인간의 의지력을 지배하게 되는) “물의 역동적 상상력”의 한 면으로 비춰지는 이때의 정서는 10년 전의 영화에서 목격한 적 있는 기시감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얼마 후 그는 고개를 돌리고 혹시 그녀가 놓친 조각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수면이 여전히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들여다보기 힘든데다, 그녀의 분노가 아직 남아있는 탓인지 물살은 좀처럼 잦아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손을 펴 가만히 물 위에 댔다. 그렇게 해 거친 물살을 잠잠히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 이언 매큐언, 『속죄』


로비가 씨Cee의 분노와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손짓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이때의 물, 흔들리는 수면은 씨의 본체로 형상화된다. 1936년의 짧은 여름 반짝 타오른 사랑 끝에 강제로 로비와 결별되어지는 씨는 영화 내내 그의 무의식에 침투해 그의 마지막 정신 한 줌에 숨을 불어넣는 생명과 재생의 근원이자 그를 품는 모성의 근원, 자유롭게 행동하는 주체로서의 물 그 자체로 현현한다. 이야기 속에서 두 연인의 물리적 죽음은 물을 통해 완전한 융합과 소생으로 나아간다. 이 역시 엘리오와 올리버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흐름이라는 물의 회귀 안에서 이루어진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자리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의 공간이 그를 받아들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준 미덕 가운데 하나. 엘리오는 부서지듯 물결을 그려가는 〈망망대해에 뜬 조그만 배Une barque sur l’océan〉 아르페지오를 반복해 치면서 어지러운 상념들을 다스려보려고 한다. 잔잔하게 일렁이거나 광포하게 굽이치는 물의 운동을 섬세하게 그린 이 피아노 곡은 영화를 위해 작곡된 오리지널 스코어처럼 영화 속에, 내러티브 속에, 엘리오의 심리 속에, 엘리오와 올리버가 뛰어든 그 ‘흐르는 물’ 속에 녹아들어 황홀한 시청각적 경험으로 나아가게 한다.


집안에서 자연으로 나가 서로 섞이는 빛과 그림자, 색채, 섬광 같은 인상에 집중하기 시작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위시해 시작된 상징주의 문학은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거나 암시하기 위해 다른 사물을 사용하고, 상징적인 단어로 언어의 음형과 뉘앙스를 통해 대상의 본질에 주관적인 정서를 작품에 투영한다. 현상에 초점을 두고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 감각에서 비롯된 언어로 초월성과 모호성을 동시에 갖는다.


견고한 음악적 형식을 갖춘 고전주의 위에 이런 당대의 움직임들을 받아들인 자칭 ‘상징주의자’이자 신고전주의 음악가 라벨은 사실에 대한 정밀 묘사가 아니라 거울을 통해 보듯 암시하는 피아노 솔로 《반영들Miroirs》을 썼다. 〈망망대해에 뜬 조그만 배〉 전반에 깔린 흐르는 물결을 ‘페달로 감싸듯Tres envelore de pedals’ 그리는 유연한 아르페지오 음형과 ‘유연한 리듬으로D’un rhythm souple’ 지시한 템포, 고르고 규칙적인 진행으로 잠잠한 수면을 그리는 부분과 잦은 변박과 조밀한 트레몰로 및 아르페지오 음형 등 불규칙적이고 예기치 않은 진행으로 굽이치는 파도를 일으키는 부분의 성격의 대비로 다형적인 물의 운동은 물론 다양한 화성과 박자를 통해 정지하지 않는 물의 ‘흐르는’ 시간을 초월하는 영속성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라벨은 작품에서 암시하는 외부의 이미지와 내부의 심상, 음악적 주관과 영향 받은 사상, 철학 등을 거울을 비추어 보듯 ‘반영해’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의 작품들이 그렇듯, 그는 자신의 노래를 부른 소프라노를 당황하게 해놓고 3인칭으로 쓴 편지에서 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 인생 라벨 전집을 녹음한 알렉상드르 타로의 연주를 추천한다. 투명함 그 자체인 피아니즘을 경험할 수 있다.


라벨은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에서 브루투스의 입을 빌린 “눈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반영된 것, 다른 것에 의해 보는 것”을 언급해 《반영들》의 개념을 설명한다. 다음은 1막 2장에서의 카시우스와 브루투스의 대화의 일부다.






- 브루투스, 최근에 당신을 가만히 살펴보니 내가 갖고 싶던 온화하고 애정 어린 표시가 당신의 눈에서 보이질 않소. 너무나 완고하고 낯선 태도로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카시우스)를 대하잖소.


- 카시우스, 오해 마시오. 내 눈빛이 모호했다면 그건 내 근심어린 얼굴을 전적으로 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오. 최근에 착잡한 감정들이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있소. 내가 마음에 품은 생각들은 그저 아마 내 태도에 흠을 내는 나 자신에게 있지만 그렇다고 내 좋은 친구들(여럿 중에서도 카시우스 당신이 유일하오)까지 마음 아프게 하진 않겠소. 나의 무시를 저 자신과 싸우느라 애정을 표하는 것도 잊은 저 가련한 브루투스 그 이상으로 이해하지 마시오.


- 그렇다면, 브루투스, 내가 당신의 감정을 오해해왔소. 그래서 난 이 가슴속에 당신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생각들 못지않은 아주 중요한 생각들을 숨겨왔는데. 말해주시오, 선량한 브루투스여, 당신은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소?


- 아니, 카시우스. 제 눈으로 스스로를 보는 게 아니라 반영되는 것으로, 다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이잖소.


- 맞는 말이오. 정말이지 유감이오, 브루투스, 당신에게 당신의 눈 속에 숨겨진 당신의 진가를 드러내줄 그런 거울이 없다는 게, 당신이 당신에게 드리운 어둔 그림자를 볼지도 모른다는 게. (불멸의 카이사르를 제외하고) 로마에 명성이 자자한 브루투스 당신 이야길 하는 것을 들었소. 저들은 이 오랜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소. 고결한 브루투스가 자신을 보는 눈을 갖기를 바라고 있소.


- 나를 무슨 위험으로 끌어들이려는 거요, 카시우스, 내 안에 없다는 이유로 내 자신에서 찾아내라는 거요?


- 그러니, 선량한 브루투스여, 들어보시오. 당신은 거울에 비춰보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으니 내가 당신의 거울이 되어, 아직 자신을 알지 못하는 당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밝혀주겠소. 그러니 나를 의심하지 마시오, 고결한 브루투스여.



엘리오의 투명한 샘은 억누를 수 없는 감정들이 각성하는 것을 잠잠히 포용한다. 엘리오는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이 고요한 샘에서 그 힘을 빌어 처음으로 올리버와 맨 얼굴로 마주하고 자신의 욕망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그 기운은 일순간 올리버를 압도한다. 나는 이 대화가 말하려는 핵심을 생각하면서,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를, 엘리오와 올리버로 바라본다. 카이사르 암살에 관련된 이 대화에서 나는 그 둘을 본다. 올리버에 대한 엘리오의 오해를, 엘리오가 그렇듯 혼자 번민하는 시간들을 보내는(엘리오에게 매일 밤 몇 시간을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올리버를, 머릿속을 채운 생각들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을 올리버가 보지 않으려 한다고 믿고, 그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속박하지 말고 나를 당신의 거울 삼아 똑바로 마주해서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고 말하듯 올리버를 보는 엘리오의 눈빛을. 


“그 순간의 침묵 속에서, 엘리오가 직시한다. 엘리오가 감히 드러내놓고 올리버를 직시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이 순간이 이르기 전에 그는 늘 힐끗 올리버를 보고 그 완고한 시선으로부터 눈길을 돌려왔다. 마침내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게 나라는 것을, 이게 당신이라는 것을,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나한테 키스해보려면 키스해보라는 눈으로 올리버를 직시한다.”


“In the silence of the moment, ELIO stares back. It is the first time ELIO has dared to stare back at OLIVER openly. Before this moment he has always cast a glance, then looked away from Oliver’s steely gaze. It is as if, finally, ELIO is saying to Oliver: This is who I am, this is who you are, this is what I want. He stares back with an I-dare-you-to-kiss-me gaze.”





꿈꾸던 올리버와의 첫 성교 이후 이전보다 더욱 뒤죽박죽인 감정들이 엘리오의 내부에 들어차 그를 혼란하게 한다. 올리버를 사랑하면서도 올리버가 싫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른 아침, 같이 있어서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는 올리버와 멀리 떨어져 이 오만 감정들이 물에 다 배설되기를 바라면서, 무섭게 달려들어 자신의 내면을 상처 내는 감정들을 물로 부드럽게 어루만짐 받기를 바라면서,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물의 방벽, 카스카테 델 세리오에서 나타나는 역동적이고 초자연적인 물의 운동.

 




제임스가 영화를 위해 새로이 쓴 어느 아름다운 장면으로 돌아간다. 어째서인지 영화에서는 그 의미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지나가버려, 그 의미가 거의 즉각 설득되지 못한 장면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을 전달해주는 중대한 장면이다. 시르미오네에서 돌아온 다음날, 엘리오는 현관 복도에서 메모가 끼워진 헤라클레이토스의 책을 발견한다. 올리버가 늘 그 책을 읽고 있었고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오는 그게 올리버의 것임을 안다. 엘리오가 잘 볼 수 있도록 올리버가 책에 끼워 두고 간, 그의 내부에서 건져진 상념이자, 엘리오에게 (엘리오가 아닌 올리버의 보이스 오버로) 보내는 연서다.


“The meaning of the river flowing is

not that all things are changing

so that we cannot encounter them twice,

but that some things stay the same

only by changing.”


“흐르는 강의 의미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해가

두 번은 마주칠 수 없는 것이 아닌

오직 변함으로써 어떤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만물은 변하므로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대립들이 조화된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올리버는 반론(이 철학자의 생각에 있는 역설적인 본질을 받아들여 통찰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펄먼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한다. “(강물이 흘러) 오직 변화함으로써 어떤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즉 시간이 흐르고 생의 현상에 의해 갖은 방식으로 변천하는데도, 본질은 본래의 상태로 남을 수 있다는 것. 시간이 헤아릴 수 없이 흘러간 끝에서도 생의 골수에 있어 아주 중요한 어떤 것들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남은 것이야말로 참된 것이라는 믿음, 그로 하여금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견고한 믿음. 나는 거기서 올리버의 진심을 읽는다. 그의 골수에 자리한 깊은 물, 심연에서부터 울려 퍼진 생의 목소리. 그것은 올리버의 목소리이자 안드레 아시먼의 목소리이자 제임스 프랜시스 아이보리의 목소리다.


시간이 흐른 뒤 엘리오는 그 목소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신의 목소리로 재현한다. 그때 마침내 두 생의 목소리가 한 몸이 되어 공명한다. 영화를 위해 새로 쓰인 장면과 원작 사이에 신비로운 교점이 나타나는 순간이다. 한 원류에서 갈라져 나온 까닭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아내에게, 나에게, 자신에게 와인을 따르는 순간, 마침내 그는 내가 내 자신이었던 것보다 더 나였고, 아주 오래전 우리가 몸을 섞을 때 그 사람은 내가 되고 나는 그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은 그때도 그랬지만,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갈림길이 제 역할을 다한 후에도, 영원히 나의 형제이자, 나의 친구,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나의 남편, 나의 연인이며, 나 자신으로 남으리라는 게 우리 둘에게는 분명해질 테니까. 몇 주를, 우리는 그 여름에 함께였고 우리의 생은 거의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간이 멈추고 천국이 지상으로 내려와 탄생에서부터 신의 힘으로 우리의 것인 그 몫을 주는 저편으로 건너갔다. 우리는 못 본 척했다. 우리는 그것을 배제한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이제 그 모든 것을 오히려 분명히 해주었다. 우리가 당신과 나라는 별들을 찾아냈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단 한 번 주어지는 것이다.”


“Because, as he’d pour the wine for his wife, for me, for himself, it would finally dawn on us both that he was more me than I had ever been myself, because when he became me and I became him in bed so many years ago, he was and would forever remain, long after every forked road in life had done its work, my brother, my friend, my father, my son, my husband, my lover, myself. In the weeks we’d been thrown together that summer, our lives had scarcely touched, but we had crossed to the other bank, where time stops and heaven reaches down to earth and gives us that ration of what is from birth divinely ours. We looked the other way. We spoke about everything but. But we’ve always known, and not saying anything now confirmed it all the more. We had found the stars, you and I. And this is given once only.”


소설은 시간이 흐른 뒤 엘리오가 용기를 내 올리버를 찾아가 다시 만났다가 헤어지고, 올리버가 다시 펄먼 가족의 빌라에 들러 엘리오와 재회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올리버가 곧 떠날 예정이지만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묻은 자리에서 올리버와 이야기하던 엘리오의 독백으로 끝맺는다. 나는 처음부터 그 결말이 세월의 무상을 온몸으로 받는 회한에 찬 결말이 아님을 알았다. 반대로 엘리오의 마지막 독백은 실은 초연한 울림을 지닌다. “Twenty years was yesterday, and yesterday was just earlier this morning, and morning seemed light-year away.(20년은 어제였고, 어제는 바로 오늘 이른 아침이었고, 아침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했다.)” 오히려 반대로 두 개의 생이 언제나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은 시간이 시간의 물리적 원리로 속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으며, 흐르는 물이 언젠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듯, 두 개의 생이 언젠가 돌아올 본래의 자리를 마련해두었음을, 나는 이해한다.



  1. TIMO 2018.04.22 01:09 신고

    역시...! 영화와 책, 각본, 고전까지 오가며 글을 꿰어가시는 능력에 또 한 번 감탄합니다. faune 님이 쓰신 글의 물살을 타고 반대편 뭍에 다다르니 이 영화는 제가 아는 그 영화이면서도 또 아닌 게 되어 있네요. 누군가가 보기엔 첫사랑 영화이고 성장 영화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봐도 그만이고 그게 차라리 마음 편하겠지만... 은유의 바다 한 가운데에 조각배 하나 타고 떠 있는 느낌이에요. 장면 하나, 등장인물의 눈빛, 흐르는 음악의 가사, 대사와 대사 사이의 여백...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다시 들여다 봐야 할 것 같아요. 전 그 일들이 이런 멋진 가이드가 있어도 꽤 걸릴 듯한데 이렇게 단숨에 한 덩어리의 글로 꿰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구아다니노 감독이 티모시에게 이 보석 같은 영화의 주인공을 맡긴 게 감사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네요. faune 님은 내가 똑똑했으면 좋겠다... 제 바람이 이뤄져 어딘가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어렴풋한 생각들 밖에 하지 못했는데 안개를 걷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언젠가, 밥이나 커피가 맛있는 곳에서 대접하며 밤새 얘기를 나누고 싶은 분이예요!

    • FAUNE 2018.04.22 16:34 신고

      맞아요...! 여름 한철의 뜨거운 첫사랑 이야기로 보는 게 속 편할 지도 몰라요. 건드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경의를 표하는 안드레 아시먼이 올리버에 대한 엘리오의 심리, 그의 사랑을 설득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하고 미묘한 서브텍스트들을 곳곳에 심었기 때문에 사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이 회고하는 이야기면서도 내외적으로 성장해가는 엘리오가 말로 설명할 수 있거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에 사랑에 관한 그런 방대한 원전들을 끌어오고 흡수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로 느껴지면서도 이 작품을 풍요롭게 만들고, 극히 미묘한 감정이 이는 순간 순간마다 섬세한 결들 더하는 것 같죠. 그중에 제가 언급한 것들은 일부일 뿐이죠. 스탕달의 아르망스에 대해서도 옥타브(엘리오)-드 말리베르 부인(올리버)-아르망스(마르치아)를 두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 써내려가다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갈 듯 할 것 같아 누락시켰고요. 아무튼 그것들을 다 이야기하려면...! 코멘트라도 남겨주신 내용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옛날 누벨바그 영화 속 프랑스 사람들처럼 카페나 식당에서 시간을 잊고 오만 것을 주절주절 떠드는 장면이 떠올라서. 함께 공감해주셔서 고마워요. 좋네요.

  2. Rim 2018.04.24 18:07 신고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이많은 서브텍스트를 언제 다 섭렵하셨는지 ... 거의 논문수준의 글을 쓰셨네요~~영화에 나오는 그 많은 지명들도 어떻게 아셨는지.. 영화 한 편 책 한권을 통해 이렇게 풍부한 가지를 칠 수 있다니 놀랍고 다시한번 안드레 애시먼과 루카 과다니노, 제임스 아이보리가 다시 보이네요..~ 그걸 상세히 글로 옮겨놓으신 faune 님도 대단하시고요~~4시간짜리 무삭제본을 보면 이 풍부한 상징들과 은유들을 좀더 여유있게 감상할수 있을듯한데 그걸 볼수 있는 가능성은 없겠죠..? 이리도 아름답고 지적인 영화를 볼수 있었다는게 너무 행복하고 faune 님의 글을 통해 다시한번 곱씹어볼수 있어 더더욱 행복하네요~~감사해요~~

    • FAUNE 2018.04.26 15:26 신고

      논문 분량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지요! 아시먼의 소설이 엘리오라는 한 인물의 내면을 설득시키기 위해 무수한 서브텍스트를 끌어왔기 때문에, 두고 두고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원작을 시간을 두고 충분히 정독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독에 의하면 편집된 장면들은 (뭐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속편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