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E ON ME

哀悼의 글

2017.12.22 01:54






   지난주 금요일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주말엔 집에 틀어박혀 있어 일시나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밖으로 나간 월요일부터 이상을 느꼈다. 정확히 수요일까지는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고열에 근육통에 두들겨 맞은 듯이 지독하게 아팠다. 동시에 오른쪽 귀는 몇 분 간격으로 사정 없이 찔리거나 뜯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 걸린 독감이 신경통과 동시에 왔다.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신경외과로 넘어가 검사를 받고 약을 먹고도 그게 이제까지 왔다. 몸이 너무 아파서 나를 기능하게 하는 모든 것이 바닥을 치던 월요일에 그 소식을 들었다. 그날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가까이 하지 않아 그 소식을 얼마 뒤에 문자와 메신저로 확인했다. 종현이 죽었대. 거기서 별 다를 것 없는 한두 마디의 내용이 반복되었다. 나는 내가 너무 아파 처음에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자살이라는 사인을 알게 되고는 화가 났다. 네가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니.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내 최초의 감정은 분명히 슬픔보다 분노에 가까웠다. 빈소가 마련되고서야 죽음이, 그래서 이 세상에 눈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금도 나는…… 그렇다.

   이십대 초반에 나를 낳은 엄마는 나를 재우고 나서 수면제를 잔뜩 먹고 유체 이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신의 영혼이 껍데기 뿐인 당신의 육신과 옆에서 잠든 갓난아기인 나를 보고는, 안 돼, 돌아가야 돼, 나 다시 돌아가야 돼, 나 저기로 돌아가야 돼, 몸부림을 치고서야 다시 몸으로 돌아가고 정신이 들었다고. 고등학생 때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이후로 나는 인간의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음을, 인간에게 정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믿었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생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겨우 용기를 내 죽음을 택하면 우리는 정말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우주를 떠도는 먼지처럼 나를 옭아맨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살아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날 이후 엄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몇 년 전 오래 전부터 뵌 적 없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 외에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는데도 나는 늘 죽음이 두려웠다. 8년 전, 지금은 도시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며 떠난 아빠와의 갈등 때문에 친척 집에서 얼마간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엄마의 시신을 보는 꿈을 꾸고 나서 혼자 주체하지 못할 만큼 오열했다. 마치 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다 빠져나가, 내게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그것이 고스란히 순수한 고통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단지 무의식에서 새어나가는 한 줌의 무언가에서 나온 꿈에서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것일 뿐이었는데 나는 무의식중에서도 늘 두려워한 모양이었다. (나의 어조가 어둡기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살아남아온 시간의 일면이다. 엄마와 우리 자매들은 지난 십여 년간 저마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서로 단단하게 묶였고, 각자의 삶의 궁핍을 서로 보듬어 이겨내 오고 있다. 불합리한 논리로 군림하려 든 인간이 떠나고 이루어진 우리의 삶은 그런 궁핍 가운데에서도 정서적으로는 충만한 것이다.



   이제는 가고 없는…… 너를 근 십여 년을 바라보아온 사람은 네가 샤이니 다섯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복잡한 캐릭터였음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너의 감성과 단순히 섬세하다기보다 예민한 성격과 결합된 세상을 대하는 태도, 네 자신의 업을 대하는 태도는 다섯 멤버들 가운데서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그러니 몇 배는 더 힘겨웠을 테다.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데 있어 아이돌이라는 태생적인 한계에 자꾸만 부딪히고, 더 나은 음악을 하고 싶고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고 보다 수월하게 그를 해내는 다른 이들보다 정체되는 것 같고, 그룹 활동으로서의 ‘최전성기’는 분명히 지났고, 이제와 삶의 숨통을 틔울 다른 행로를 찾기가 다른 동료들보다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그러다보면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매 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준 건 라디오 방송을 하던 지난 3년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올해 초 결국 라디오 방송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와서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네 자신이 그 방송을 참 많이 아꼈을 뿐 아니라 그게 너의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게 해주는 연장선이자 복잡다단한 생과 업의 문제들로부터 너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어주는 수단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다.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는 팀의 동생들을 생각하면,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왜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느냐고 비교해 너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팀으로 묶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사람이니까. 바쁘게 사는 데 삶의 긍정적인 힘을 얻는 이, 바쁜 가운데 틈틈이 자신을 확인하며 기운을 내는 이, 상대적으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얻을 때 비로소 삶의 긍정적인 힘을 얻는 이가 있을 때, 너는 그 어디에도 제대로 들어맞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이 아닌 누구도 찾아주지는 못하는 그 자리를 어떻게든 찾아야 했는데, 의사가 재수 없는 개떡 같으면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이해해줄 다른 의사(그런 의사는 분명히 있을 텐데)를 찾을 힘을 더 내었어야 했는데, 놓아버리고 만 것이다. 지쳤다는 말은 그래서 말의 무게란 것이 다 실어진 것처럼 속절없이 무겁다. 너는 놓아버리고, 어딘가 초연한 사람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였다가, 얼마간 살다가 갔나보다. 네 소식을 들은 엄마가 말했다. 너를 나보다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안 됐어. 어느 순간 숨이 탁 막혀버린 거야.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야.

   내 몸도 끔찍하게 아픈 상태로부터 점차로 회복될 기미가 보이고, 귀의 신경통도 조금 더 간헐적으로 일고 있다. 내벽을 긁듯 울부짖는 너의 유서를 읽고 나서는, 내 청춘 가운데 한 자리를 내준 내 이야기 속의 종현을 생각했다. 그 아이가 바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작곡은 공포로 시작해.” 종현이 말했다. 조심스럽고, 예민했다.

   “형체가 없어. 전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아. 아주 잠깐 흐르는 것 같다가 굳고 흩어져버려. 손에서 흘러나가는 먼지처럼. 쓸 수 있는 기호란 기호를 죄다 집어넣다보면 이런 식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어서 미칠 것 같지. 연주하기 전까지 음악은 산 채로 매장된 거야. 살아 있지만 보이지 않아.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떻게 옮길 수 있지?”

   ……평생 그런 공포를, 괴로움을 견뎌야 해.



   내 이야기 속의 다섯 명은 모두가 실존 인물의 이름을 가졌고 실존 인물의 인상을 가졌지만, 대단히 더딘 속도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차츰 확장될수록, 성장통과 함께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 가고 있는 참이었다. 몇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 시간과 발전해온 과정이 내게 남아 있는 한, 어떤 이름이든 이제 그 외피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내 이야기 속의 종현은 실존했던 너에게서 영감을 받아 나왔다. 친구이자 동료인 이들을 아끼고 존중하고 그들에게서 늘 배울 줄 알고 인정이 많고 포용이 넓으며 따뜻한 사람. 사실상 유일하게 창작을 하는 입장에 있고, 창작에 대한 고민과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벌써 수 년 전 쓴 저 음악적 고민도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런 것들은…… 실제 종현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다만 나의 이야기 속의 종현은 그를 받아들임에도 그것과 자신을 별개로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울하고 예민한 구석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생의 의지를 지닌 선한 사람. 사랑을 받고 자라 진정으로 사랑을 할 줄을 아는 사람.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종현을 가장 밝은 인물로 바라보았다. 네 친구가 성장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인물로 생각해왔다. 이 사실은 이야기를 쓰는 내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실제 종현과 이야기 속의 종현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빛과 끊임없이 파고들어오려는 어둠과의 사투다. 간단명료하게 말해 어둠이 있을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내외적으로 고생스러운 투지와 간절한 희구 끝에 보존되는 빛. 그런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내러티브다. 내가 생각하기로, 종현 그리고 네 인물들은 오만 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 결론적으로는 그 나름으로 생의 의미와 그 가치를 찾을 사람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거의 그렇다. 이야기 가운데 피할 수 없는 정신 상담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는 늘 조심스러웠다. 은파가 상담해오던 환자가 결국 자살하고 그 남편이 은파에게 해를 가한 에피소드는 고통스럽게 쓴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니 이제 또한 허구를 현실과 떨어뜨려 생각해도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모른다.

   4, 5년 전부터 실재하는 사람들에 영감을 얻는 글쓰기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데뷔년도인 2008년의 매끄럽지 않은 초안을 거쳐 다듬어와 지금까지 끝나질 않는데도 쉽게 중단할 수 없었던 까닭은 나 자신에게는 내 청춘의 한 면에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갈무리해 남기고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에 서고 싶었다. 나의 내면적이었던 이 일이 이제는 끝내 어떻게 될지는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운명을 스스로 저버리고 만 너를, 다시 긴 시간을 두고 보내며 늘 너를 기억하는 일이 될 것 같다.

   저마다, 때마다의 고비를 넘긴 뒤로는 위대한 업이란 실상은 생과 검질기게 맞닿아 말 그대로 생업이었던 옛날 많은 음악가들을 생각한다. 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숱한 것들은 밀어내고, 업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바로 생을 위한 업이 되는 법을 깨우칠 수 있었다면 너는 아직 살아 있을 텐데. 네가 쓴 숱한 노랫말은 너의 내면에서만 나왔기 때문에 너를 진정으로 위로하지 못했을까. 네가 살아온 지난 몇 년의 생이 어떠했기에 너의 생의 목소리가 끝내 너를 설득하지 못했을까.

   나의 늦은 의문은 여기까지다.

   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정신이 혼미했던 때, 나는 네 영혼이 어디에 있든 구원받기를 간구했다. 네가 그때에 이르러는 현명한 길을 택하기를 간구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이제까지 살아 있는 것에, 살고 싶은 것에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어제는 발인이 있었다. 이제는 산 사람의 이야기다. 수도 없이 터지는 플래시 가운데 가장 감정적인 그 순간을 견뎌내는 진기와 기범이와 민호와 태민이가 고마웠다. 한 사람 한 사람 말없이 안아주고 싶었다. 육신은 죽었어도 영혼은 여전히 살아 먼 길을 떠난 너의 행방을 알지는 못해도, 충분히 슬퍼해주고, 다시 말해 충분한 애도哀悼를 가지고, 충분히 마음을 추슬러 네가 뜻 깊게 살 수 있었을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바라며, 바랄 것이다.